안양이혼전문변호사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22일 “민주당이 국회 후반기 상임위 운영을 100% 맡아 책임지겠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정무위원회 법안 통과율 17.6%’를 비롯해 국민의힘이 위원장을 맡은 상임위원회 활동이 저조해 국민 피해가 심각하다는 점을 명분으로 앞세웠다. 물론 상임위원장이 제때 회의를 열지 않거나 필리버스터로 국회 운영을 지연시키는 국민의힘 태도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야당의 비협조를 이유로 17개 상임위원장직을 독식하겠다는 것은 집권여당이 협치의 문을 걸어잠그겠다는 엄포나 다름없다.
정 대표의 ‘상임위원장 독식론’은 지난 17일 “국회 입법 속도가 너무 느려 민생현안 대응이 어렵다”며 이재명 대통령이 답답함을 토로한 직후에 나왔다. 상법·자본시장법 개정안 지연을 문제 삼은 것이다. 이에 정 대표가 상임위원장 싹쓸이론을 꺼내 들었고, 한병도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소속 위원장의 사회권과 안건 상정권을 제한하는 국회법 개정까지 시사했다. 이에 더해 후반기 국회의장 후보들도 ‘일하는 국회’를 앞세워 독식론에 힘을 싣고 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의 입법 속도전은 민생을 위한 효율적인 국회 운영을 독려하는 취지이지, 거대 여당이 매사를 독주하라는 뜻일 리는 만무하다. 상임위 싹쓸이는 극한 대결의 악순환을 초래해 정치를 실종시키고, 여야가 머리를 맞댈 국가적 의제를 질곡에 빠뜨릴 수 있다.
정 대표가 “한 석이라도 많은 당이 독식하자”며 내세운 ‘미국식 모델’은 한국의 현실과는 거리가 있다. 양원제와 소수당의 강력한 견제장치가 공존하는 미국 시스템을 다수당 중심 단원제 기반의 한국 국회에 무비판적으로 대입하는 건 야당을 국정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민주당은 2020년 21대 전반기 국회 때 18개 상임위를 독식하고, 임대차 3법 등 민생입법을 독주했다가 그 부작용으로 선거에서 졌던 후과를 돌아봐야 한다.
여당이 강조하는 책임 정치는 야당을 포용·존중하고, 국민과 소통하며, 합리적 절차에 따라 정책·입법으로 구현해나가야 한다. 국민의힘도 시급한 국정과제까지 발목잡기로 일관하는 구태·태업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민심의 혹독한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 통상·안보·에너지 위기가 중첩된 지금은 민생과 국익을 우선하고, 협치·대화·타협의 정신을 살려가는 여야의 환골탈태가 절실한 때다.
지난 3월9일 국민의힘은 긴급 의원총회에서 의원 107명 전원 명의로 계엄 사과와 ‘윤어게인’ 반대 등의 내용을 담은 결의문을 채택했다. 그간 장동혁 체제가 무리하게 밀어붙인 ‘윤어게인’ 일변도의 노선과 결정은 어떻게 다시 바꾸겠다는 것인지 알맹이는 빠진 결의문이었다. 하지만 ‘윤어게인’에 매달려온 유튜버 전한길에게 충격과 분노를 안겨주기엔 충분했다. 그는 자신의 유튜브 방송에서 이런 저주의 비난을 퍼부었다.
“그래 잘 가라. 이재명한테 가라고! 국민의힘 106명은 이재명한테 가라고! 더불어민주당에 가라고! 너희들이 보수야? 너희들이 우파야? 너희들은 이재명 이중대야! 국민의힘 106명 의원들은 이재명 이중대고, 더불어민주당 이중대고, 그들은 민주당이나 이재명으로부터 돈을 먹었거나 중국으로부터 돈 먹은 새X들입니다.”
미안하게도, 슬그머니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기 어려웠다. 논점을 이탈한 엉뚱한 반격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른바 ‘절윤’과 이재명·민주당이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걸까?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다”는 말이 있듯이, 전한길의 지지자들은 무슨 말인지 금방 이해하면서 전한길의 분노와 증오에 동참했겠지만 정색을 하고 따져보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그런데 국민의힘 전체 의원은 107명인데 왜 106명이라고 했을까? 실수인가? 그렇진 않다. 자신이 아끼는 장동혁에게 갱생의 기회를 주고 싶었을 게다. 전한길은 장동혁에게 분명한 입장 표명을 요구하면서 국민의힘 탈당을 예고했지만, 2시간여 만에 돌연 탈당 계획을 번복했다. 윤석열 쪽 변호인단의 ‘탈당 극구 만류’ 요청에 따른 것이라고 했다. 그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올린 입장문에서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의 속마음은 ‘윤어게인’일 것”이라며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하이에나같이 물어뜯기만 하는 친한동훈파들과 중진이랍시고 무게 잡는 대다수의 의원들 속에서 어쩔 수 없이 106명 결의문에 동의한 것일 것이고, 속마음은 그래도 초심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고, 윤어게인과 부정선거 척결에 대한 의지를 가지고 계실 것이다.”
선동가들의 이분법 너무 단순
재미있는 주장이다. 이건 전한길의 의도와는 달리 장동혁에 대한 모욕이 아닌가. 장동혁은 57세의 나이에 냉정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판사 생활을 16년간이나 했던 사람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변신으로 당대표에 당선돼 “죽기를 각오하고 나가 싸우자”는 슬로건을 내걸면서 “전쟁이다”라고 외쳤던 열혈 투사다. 그런 사람을 겁이 나서 자기 생각조차 밝힐 수 없는 연약한 어린아이 취급하다니, 이게 말이 되는가?
뜻밖에도 우리는 여기서 ‘윤어게인’의 본질을 읽어낼 수 있다. ‘윤어게인’파는 이재명·민주당에 대한 증오의 연대감으로 포박된 부족주의 전사들이다. 이들의 세계에서 ‘아군’은 선과 정의의 화신이지만, ‘적군’은 악과 불의의 화신이다. 적군은 강하고 사납지만, 아군은 약하고 소심하다. 일국의 대통령일지라도 아군이면 아홉 살 먹은 아이로 간주한다. 아무리 미련하고 어리석고 무책임하고 사악한 짓을 저질러도 그건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 아홉 살 먹은 아이를 괴롭힌 적군에 대한 증오심만 불태우면 된다.
전한길만 그러는 게 아니다. 전한길 못지않게 장동혁을 아끼는 고성국을 보라. 그는 장동혁이 ‘절윤 결의문’을 읽지 않고 원내대표 송언석이 읽게끔 한 것에 감동해 이런 찬사를 보냈다.
“장동혁이 판은 깨지 않으면서, 자신의 소신은 지켜가면서 무한 인내 전략을 구사했다. 안쓰럽고 마음이 아프다. 집단 자살하는 레밍 떼 국민의힘 의원들 사이에서 홀로 빛난 장 대표의 리더십을 다시 한번 평가했다.”
행여 웃으면 안 된다. ‘윤어게인’ 선동가들은 나름 진지하고 심각하다. 그들이 자신들의 유튜브 사업을 위해 그러는 거 아니냐고 의심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가치·이익 이분법은 너무 단순하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이들을 따르거나 끌고 가는 열성 지지자들이 나름의 순수한 애국심으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이다. 너무 순수해서 큰 문제가 될 정도로 말이다. 순수가 지나치면 외골수가 되기 쉬우니 이를 어찌하랴.
한 번쯤 계엄령에 공포를 느낀 동료 시민들의 생각을 할 법도 하건만, ‘윤어게인’ 외골수에겐 그런 배려가 없다. 윤석열은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무능력자인 데다 걸핏하면 욱하면서 격노하는 폭군이었다는 증거와 증언들이 뒤늦게나마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러면 이재명·민주당을 이기기 위해 윤석열을 넘어서려고 했던 보수 정치인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만도 하건만, 어찌 된 게 이들을 ‘배신자’라고 욕하면서 이재명·민주당보다 더 증오한다.
‘윤어게인’ 선동가들은 순수한 지지자들에게 ‘증오’를 계속 공급해주는 ‘증오 마케팅’의 선수들이다. 고성국은 자신이 한동훈을 증오를 넘어 아예 인간으로 보지 않게 된 결정적 장면이 있었다고 말한다. 계엄 다음날인 12월4일 새벽 계엄 해제를 위해 국회 본회의장에서 한동훈이 이재명을 만나 악수한 장면이란다. 그는 12월9일엔 “지금 종북 주사파들이 윤 대통령에게 내란 수괴라는 누명을 덮어씌워서 우리 자유우파를 완전히 궤멸시키겠다고 나서고 있다”고 주장했다. ‘종북 주사파’는 지지자들의 증오의 피를 끓게 만들기 위해 동원한 표현이겠지만, 해방정국과 1950년대 한국 사회의 정신상태로 돌아가라니 너무 심한 게 아닌가?
공허한 삶에 목적을 주려 더 기승
그러나 그런 정신상태를 적극 긍정한 장동혁은 2025년 3월22일 탄핵 반대 집회에서 “12·3 계엄은 반국가세력에 맞서서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라는 시대적 명령”이라며 계엄을 옹호했다. 이런 일련의 활동으로 ‘윤어게인’ 지지자들을 감동시킨 장동혁은 당대표가 되겠다는 야심을 품고 이재명·민주당 공격에 앞장섰다. “계엄 유발한 정청래, 내란교사범·내란주범”(8월4일), “이재명 정권, 삼류 조폭 정치… 끌어내리겠다”(8월17일), “이재명 정권을 끌어내리고 정권을 다시 탈환하겠다”(8월23일) 등등.
금배지를 단 지 겨우 3년2개월 만인 8월26일, 장동혁은 전한길의 지원을 받아 대선 후보였던 김문수를 제치고 제1야당의 대표로 선출되는 ‘기적’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그건 한국 정치를 위해서건 그 자신을 위해서건 참담한 비극이었다. 그에겐 ‘윤어게인’ 세력의 요구에 따르면서 이재명·민주당에 대한 증오를 증폭시키는 것 이외엔 이렇다 할 비전과 콘텐츠가 없었기 때문이다.
장동혁은 “이재명 정권과 전쟁 출정식, 죽기로 싸우겠다”(8월28일)고 했고, 전한길은 “사악한 괴물 정권, 이재명 정권이 탄생했다”(9월14일)고 했다. 장동혁은 “전쟁이다. 우리가 황교안이다. 뭉쳐서 싸우자. 이재명을 끝내야 한다. 이 정권을 끝내야 한다”(11월12일), 고성국은 “당사에 전두환·윤석열 사진 걸자”(2026년 1월29일)고 했고, 전한길은 “이 대통령이 중국으로 피신할 준비를 하고 있으며, 싱가포르에서 160조원과 군사기밀을 중국에 넘겼다”(3월18일)는 괴담을 팔았다.
이렇듯 지지자들을 ‘증오의 연대감’으로 포박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졌으며, 이런 배틀이 국민의힘의 정치를 먹어 치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적군’에 대한 증오의 힘은 강하다. 한 집단 내의 갈가리 찢긴 분열을 치유하는 놀라운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혹 그런 경험이 없으신가? 친하지 않은 사람일망정 누군가를 같이 증오할 때 느끼는 묘한 연대감 말이다.
미국 사회운동가 에릭 호퍼는 “우리는 증오를 통해 자기와 비슷한 사람들과 결합해 하나의 불길로 끓어오르려는 갈망에 전율하는 익명의 분자가 된다”며 “공동의 증오는 아무리 이질적인 구성원들이라도 하나로 결합시킨다”고 했다. 어디 그뿐인가. 호퍼가 지적했듯이, 열정적인 증오는 공허한 삶에 의미와 목적을 줄 수 있다. 증오의 발산에 돈과 시간과 열정을 아낌없이 바치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여권엔 증오의 연대감으로 포박된 사람들을 조롱과 멸시로 대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좋은 자극을 주기 위해 그러는 것일망정 그러면 안 된다. 증오에 포박된 사람들이 자신의 증오를 의심하게 만들 감동적인 일을 해도 모자랄 판에 증오해야 할 추가적인 이유를 제공해서 뭘 어쩌자는 건가. 그렇게 해서 야당을 몰락의 수렁에 더 빠져들게 만드는 정략적 이익을 얻을 수는 있을망정 그건 정말 나라를 망치는 짓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지난달 28일 이란을 기습적으로 공격하면서 전쟁이 발발했다. 이란과 걸프 국가들의 에너지 시설이 잇따라 파괴되고,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을 사실상 봉쇄해 국제유가가 치솟고 세계 경제에는 깊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던 전쟁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3일(현지시간) 이란과의 종전 회담이 진행 중이라고 밝히면서 또다시 전환점을 맞았다.
유달승 한국외국어대 페르시아어·이란학과 교수는 “사실 이 전쟁은 내일 끝나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했다. 미국은 전쟁 목표였던 이란 정권교체에 실패했고, 이란은 원치 않는 ‘강요된 전쟁’에 맞대응하고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전쟁의 배경은 단순하지 않을 수 있다. 유 교수는 미국이 이번 전쟁을 통해 이스라엘 중심의 중동 질서 재편, 페트로 달러와 에너지 패권 방어, 중국의 중동 내 영향력 차단 등을 노렸고 이란은 미국의 위상을 약화시키기 위해 호르무즈 해협 봉쇄 카드까지 꺼내들었다고 분석한다.
유 교수는 미국과 이란이 현재 종전을 위한 ‘명분 찾기’를 하고 있으며 이란 2대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 사망 40일째인 다음달 8일을 기점으로 합의가 이뤄질 가능성에 주목했다. 유 교수와의 만남은 지난 19일 이뤄졌고, 24일 전화 인터뷰를 추가했다.
이란 동결된 팔레비 왕조 자산 환수 원해
- 트럼프가 협상이 잘 진행되고 있다고 했는데 이란은 접촉한 적 없다고 합니다. 어떤 상황이라고 보시는지요.
“지난 8일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이 뜬금없이 SNS에 손해배상, 재발 방지, 이란 체제 인정 등 세 가지 종전 조건을 올렸는데 양측이 계속 물밑 접촉을 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알리 라리자니(최고국가안보회의 사무총장) 참수 사건이 발생하면서 이란이 곧바로 휴전 협정을 체결하기가 적절치 않게 된 거죠. 트럼프 대통령의 언급은 이란의 제안에 대한 답변으로 보입니다.”
- 이란은 종전을 위해 무엇을 받아내려 할까요.
“이란은 경제 문제가 중요합니다. 전쟁 배상금을 명분으로, 실제로는 미국에 동결된 팔레비 왕정의 자금·자산을 돌려받으려 할 걸로 보입니다. 또 경제제재 해제의 수준을 두고 협상하겠죠. 전쟁 이후에도 경제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또다시 국민들이 정권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게 되고 사회 혼란이 노정될 수 있습니다. 또 하나는 전쟁 재발 방지입니다. 이란은 이번 전쟁을 ‘강요된 전쟁’이라고 합니다. 원치 않지만 미국과 이스라엘이 강요한 전쟁이라는 거죠. 그러니 미국이 또다시 공격하지 않도록 명문화하는 게 핵심 사항이 됩니다. 양측이 호르무즈 해협의 법적·제도적 장치와 운영 문제도 합의를 해야겠죠.”
- 미국은 무엇을 원할까요.
“명분 찾기를 할 것 같습니다. 이란의 핵 능력과 탄도미사일 개발을 저지해 군사적 목표를 달성한 승리한 전쟁으로 만들려고 하겠죠. 지금 미국 언론의 논조를 보면 전쟁의 책임을 이스라엘에 뒤집어씌우면서 발을 빼는 수순으로 보입니다.”
- 언제쯤 협상이 타결될까요.
“다음달 8일이 2대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 사망 40재입니다. 시아파는 애도의 완성 시점이 40일이거든요. 언론 보도를 보면 휴전 협정 체결일이 4월7일, 4월9일로 거론되는데 양측이 시점을 가지고 힘겨루기 하는 것 같아요. 이란은 4월7일 전에 협정을 맺고 4월8일 ‘우리가 승리한 전쟁’이라는 대규모 군중집회를 하려는 것 같고, 그게 불편할 수 있는 미국은 4월8일 이후에 하려는 듯합니다. 협상 과정이 삐걱거릴 수 있지만 일단 4월8일을 분기점으로 협상이 될 거라고 봅니다. 그러면 트럼프의 대이란 정책이 전쟁이라는 극한 대결을 통해 새로운 전환기를 맞겠죠.”
- 하지만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한 달이 다 돼갑니다.
“사실 이 전쟁은 내일 끝나도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이란이 미국이나 이스라엘을 공격한 것도 아니고, 미국의 당초 전쟁 목표였던 이란 정권교체도 관철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자존심 상한 미국이 이란이 다시금 고개를 들지 못하게끔 경제 시설과 사회 시설을 초토화하려고 계속 끌고 간 거죠.”
- 미국·이란이 핵 협상을 하는 와중에 전쟁이 났습니다.
“지난달 28일 공습했는데, 그 이틀 뒤인 3월2일 미국과 이란이 핵 협상을 하기로 돼 있었습니다. 이란은 첫 공습 당일 두 군데서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 페제시키안 대통령이 각각 주도한 회의를 진행한 걸로 저는 들었어요.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를 노려서 지휘 체계를 무력화시키면 이란의 대응력이 상당히 약화될 것이고, 시민들이 거리로 뛰어나와 봉기하지 않겠냐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첫 공습 이후 하루이틀 만에 미국의 전쟁 목표가 바뀌었어요. 이란이 즉각 반격하는 등 복원력이 빠르게 이뤄졌기 때문입니다. 트럼프의 발언이 계속 우왕좌왕하는 것도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이겠죠.”
- 이란이 걸프 국가의 미군 시설·기지를 집중 타격했습니다.
“걸프 왕정국가들은 미군기지가 자국의 안보를 지키기 위한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스라엘을 지키기 위해 있었다는 거라고 이란이 역이용해 주변 걸프 국가들을 공격하는 비대칭 전략을 쓴 것입니다. 미국에 압력을 행사하라는 뜻도 있겠죠. 어쨌든 이런 전략·전술이 나름대로 성공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트럼프, 공습하면 내분 일어날 거라 판단
- 트럼프가 공습 직후 ‘시민 봉기’를 거론했는데요.
“이란 내 쿠르드족의 정당 조직이 7개 있습니다. 이들이 공습 6일 전인 지난달 22일 정치연맹체를 구성했습니다. 그런데 쿠르드 공산당(CPI)이 발표한 성명에서 쿠르드 독립국가의 설립은 지지하지만 모사드(이스라엘 정보기관)와 CIA(미 중앙정보국)에 의해 추진되는 이런 연합체에는 참여하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지난해 ‘12일 전쟁’ 이후에 CIA와 모사드가 이란의 다양한 반대 조직들을 접촉해 조직적인 내분·내전을 준비했고, 실제 공습하면 그들이 들고일어날 거라고 판단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종교 이데올로기 국가인 이란 내에 현 체제에 대해 불만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지만 체제를 반대하는 것과 외세에 의해 체제가 붕괴되는 것은 다른 얘기죠.”
- 트럼프가 전쟁 개시는 물론 진행 과정에서 이스라엘에 계속 끌려가고 있다고 보십니까.
“미국 입장에서 이스라엘은 전략적 자산입니다. 두 나라의 특별한 관계가 만들어진 결정적 시기가 1967년 제3차 중동전쟁이에요. 6일 만에 이스라엘이 이집트와 요르단, 시리아를 초토화시켜 항복 선언을 받아냈죠. 그 후 미국의 중동 전략은 여러 국가로 분산 투자하는 대신 이스라엘에 집중합니다. 미국이 하기 싫은 더러운 일을 대신하는 역할을 이스라엘이 해요.”
- 미국·이스라엘의 전쟁 목표가 달라지고 있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전략적 목표가 충돌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지금 이스라엘이 레바논 남부에 지상군을 투입했습니다. 이스라엘이 헤즈볼라(레바논 무장정파)를 초토화하려고 들어간다는 분석도 있지만 헤즈볼라는 그렇게 사라지는 조직이 아닙니다. 그걸 아는 이스라엘이 이런 군사작전을 벌이는 것은 이번 기회에 영토를 확장하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레바논 남부에 리타니강이 길게 흐르는데 수자원도 확보하고 이스라엘 북부 국경선의 안전지대를 확보하는 것이 실질적인 지상전 투입 목적이라는 거죠. 미국은 이스라엘이 레바논으로 영토를 확장하는 시도에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봐요.”
- 미국은 이란을 공격한 이유가 정권교체만은 아닐 듯한데요.
“미국이 1991년 걸프 전쟁 이후 부상한 이란을 이번 전쟁을 통해 약화시키고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중동 질서를 재편하려고 했습니다. 또 페트로 달러를 방어하기 위한 에너지 패권 전쟁의 성격도 매우 큽니다. 2000년대에 들어와서 페트로 달러에 도전하는 국가들이 나타났어요. 이라크, 이란, 리비아, 베네수엘라입니다. 미국은 2003년 이라크 전쟁으로 사담 후세인 체제를 붕괴시키고 페트로 달러로 복귀시켰습니다. 2011년 리비아의 카다피 체제가 무너졌죠. 올 초에는 베네수엘라 마두로 대통령을 체포했습니다. 마지막 남은 나라인 이란 체제를 붕괴시키겠다는 것이죠. 또 친미 국가인 UAE나 사우디아라비아도 중국과 가까워지고 있어 이를 차단하고 중동 내 중국의 영향력을 축소하려는 겁니다. 미국의 이런 거대한 시나리오는 오래전부터 설계됐다고 봐요.”
- 이란은 왜 그렇게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려는 걸까요.
“그래서 이번 전쟁의 성패는 군사력이 아니라 국제유가에 의해 결정된다는 얘기가 나오는 거죠. 1956년 제2차 중동전쟁을 ‘수에즈 운하 전쟁’이라고 부릅니다. 그 전쟁을 통해 영국의 힘이 완전히 약해지고 미국이 패권국이 됐습니다. 이란은 ‘수에즈 운하 전쟁’의 데자뷔식으로 ‘호르무즈 해협 전쟁’으로 만들어 국제사회를 압박하고 세계 경제를 볼모로 미국의 패권과 위상을 실추시키려 한 것으로 봅니다. 페트로 달러 체제를 흔들려는 의도도 있겠죠.”
- 올해 1월 이란에서 대규모 반정부·반체제 시위가 발생했습니다.
“제가 이란을 공부한 이후로 이렇게 폭력적이고 총탄이 난무하는 시위는 없었어요.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시민들의 불만이 강하게 표출된 것인데, 경제위기는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 47년 동안 계속된 게 아닙니다. 이란은 반미 국가지만 반서방 국가는 아니거든요. 2018년 트럼프 행정부 1기 때 일방적으로 이란 핵 합의(JCPOA)를 탈퇴하고 고강도 경제제재를 하면서 무너졌어요.”
- 모즈타바 하메네이가 3대 최고지도자로 선출된 것은 어떻게 봐야 할까요.
“알리 하메네이는 올해 86세로 고령인 데다 실질적으로 영향력도 별로 없었어요. 이번 전쟁이 아니었더라면 그의 아들이 최고지도자가 되기 어려운 구조였어요. 우선, 이란은 세습체제에 상당히 민감합니다. 호메이니의 아들을 제2대 최고지도자로 추대하자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안 된 게 세습제 문제였어요. 두 번째는 모즈타바의 종교 지위가 아버지처럼 약했습니다. 시아파의 성직자 지위는 호자톨 이슬람, 아야톨라, 그랜드 아야톨라, 마르자에 타클리드 순으로 올라가는데 알리 하메네이는 호자톨 이슬람이었어요. 그것을 헌법을 개정해서 마르자에 타클리드라는 문구를 뺍니다. 정치권력과 종교 권위가 그때 분리돼요. 알리 하메네이가 2대 최고지도자로 취임한 후에 종교계가 그를 지지하지 않았습니다. 모즈타바도 아버지와 똑같은 경우예요. 한편으론 이번 전쟁으로 모즈타바가 최고지도자로 선택된 것이 나쁘지만은 않다고 봅니다. 공습 첫날 부상으로 살아 있는 순교자라는 서사가 만들어져 그를 중심으로 뭉칠 수 있는 동력이 생겼어요. 이 전쟁을 종식시킬 정통성을 가진 적임자는 모즈타바밖에 없어요. 그의 지지 기반이 강경파와 혁명수비대라고 하는데, 만약 제3의 인물이 최고지도자가 됐다면 전쟁을 끝내기 쉽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전쟁 장기화 땐 이란 더 강한 ‘철권통치’
- 모즈타바 하메네이가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습니다.
“부상 정도는 확인이 안 되는데 러시아와 중국이 모즈타바를 인정한 걸 보면 살아 있겠구나 생각합니다.”
- 이란에서 순교자는 어떤 의미입니까.
“이란은 끊임없이 외세의 침입을 받으면서 많은 고통을 받아왔습니다. 시아파는 소수파 종교였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탄압받고 항상 졌어요. 그래서 시아파는 슬픔과 패배의 역사인데, 생명력을 가지고 이어진 전통이 바로 순교자예요. 이 순교자 사상은 슬픔과 패배의 역사를 저항과 투쟁의 정신으로 승화시켰어요.”
- 모즈타바가 통치하는 이란을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이 전쟁이 장기화하면 힘의 축이 군부로 더 쏠리기 때문에 이란은 더 강력한 폐쇄사회와 철권통치로 갈 가능성이 큽니다. 이란은 전쟁을 단기전으로 끝낸 뒤 모즈타바에 대한 영웅 서사로 만들 것 같습니다. 모즈타바는 본인의 단점·결점을 보완하는 식으로 권력구조를 가져갈 거라고 봅니다. 시대가 변하고 세상이 변했기 때문에 이란도 기존의 방법을 고수할 수는 없어요. 빨리 경제 재건을 하지 않으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모즈타바가 개방·개혁으로 나가지 않으면 본인의 입지도 흔들릴 수밖에 없어요.”
- 이번 미국·이란 전쟁이 한반도 입장에서는 어떤 시사점이 있을까요.
“우리의 국력과 위상이 많이 높아졌어요. 수동적으로 관망하고 우리 경제에 미칠 파장만을 계산하기보다는 적극적인 중재 외교를 펼칠 전환점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란과 접촉해 미국의 요구 사항을 조율하고, 또 우리가 아랍 국가들과의 관계가 중요하니까 그들의 입장을 이란에 전달하는 역할이 필요합니다. 이런 중재의 경험으로 만들어진 네트워크가 한반도 문제로도 연결이 될 수 있습니다.”
- 한국은 이란과의 관계를 어떻게 가져가야 할까요.
“흔히 이란을 사우디아라비아(원유), 러시아(천연가스), 호주(광물), 튀르키예(소비) 네 나라를 합친 국가라고 비유합니다. 인구도 9300만입니다. 중동에서 이집트 다음으로 인구가 많아요. 잠재적인 거대한 소비시장이죠. 그리고 국민의 3분의 2가 35세 미만인 젊은 나라여서 성장 잠재력이 높다고 볼 수 있죠.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언젠간 전쟁이 끝날 거고 이란이 개방화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단순히 경제 대상이 아니라 문화 외교와 정치 외교 등 다양한 측면으로 접근해서 관계를 확대 발전시키면 한·이란 관계도 높아지게 되겠죠.”
- 한국은 UAE와 아주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는데 이란과는 불편해질 수도 있지 않을까요.
“굳이 어느 나라를 배제하지 않는 것이 현실적인 실용외교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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