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이혼전문변호사 메모리 사용량 6분의 1로 뚝반도체 ‘수요 감소’ 예측 탓에삼성·하닉 주가 이틀간 하락효율이 수요 키운다는 주장도
인공지능(AI) 메모리 사용량을 최대 6분의 1로 낮춘다는 구글의 ‘터보퀀트’ 기술이 메모리 반도체 주가를 뒤흔들고 있다. 업계에서는 터보퀀트가 AI 시장의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라는 낙관론과, 평가하긴 이르다는 신중론이 교차하는 가운데 필요한 메모리 사용량이 줄어도 전체 반도체 수요는 오히려 늘어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29일 정보기술(IT) 업계에 따르면, 구글 리서치가 지난 24일(현지시간) 논문을 통해 공개한 차세대 양자화 알고리즘 터보퀀트를 두고 갑론을박이 오가고 있다. 터보퀀트는 AI 추론의 관건인 맥락 데이터를 압축해 메모리 사용량을 줄이는 기술이다. 챗GPT 같은 거대언어모델(LLM)이 길고 복잡한 작업을 수행하려면 이전 대화 내용(맥락 데이터)을 잘 기억해야 하는데, 이는 AI 모델의 고질적 한계인 메모리 병목으로 이어진다.
구글은 터보퀀트가 맥락 데이터의 핵심은 유지하면서도 효과적으로 압축, 메모리 사용량을 기존 대비 최대 6분의 1 수준까지 줄인다고 설명했다.
신동훈 NC AI AX테크센터장은 “동일한 그래픽처리장치(GPU) 장비에서 더 빨리 요청을 처리하고 같은 크기 모델이 훨씬 더 긴 문맥을 소화하며, 동시에 더 많은 사용자의 요청을 처리할 수 있게 된다”면서 “이는 상용 서비스 운영에 들어가는 막대한 서버 유지비가 크게 절감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적은 비용만으로 효율적인 서비스 운영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회의론도 만만치 않다. 국내 AI 스타트업 모티프테크놀로지 임정환 대표는 “지금까지 유사한 연구가 여러 기관에서 많이 나왔지만 상용화된 적은 한 번도 없다”며 “현재 LLM의 표준이 된 ‘트랜스포머 아키텍처’와 같이 AI 서비스에 널리 쓰일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터보퀀트에 관심이 큰 것은 메모리 반도체 수요와 관련이 있어서다. 터보퀀트로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줄어들 것이란 관측이 나오면서 관련 주가는 즉각 반응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가는 이틀간(26~27일) 각각 4.7%, 6.2% 하락했다.
그러나 터보퀀트로 메모리 사용량이 줄더라도 반도체 수요는 오히려 늘어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권석준 성균관대 반도체융합공학과·화학공학부 교수는 효율이 수요를 키운다는 취지의 ‘제번스의 역설’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권 교수는 “석탄 효율이 올라가면 같은 에너지를 더 적은 석탄으로 만들 수 있어 석탄 소비가 줄어들 것이라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반대였다. 터보퀀트와 메모리 사이 관계를 보는 관점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현재 상황이 국내 메모리 업체엔 기회이자 위협이라고도 진단했다. 권 교수는 “터보퀀트 같은 메모리 절약 방식뿐 아니라 온갖 방법론을 들고나오는 고객사가 더 많이 나타날 것”이라며 “뒤처지는 순간 단순 범용 메모리 하청업체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고객의 맞춤형 설계에 대응할 수 있는 사실상 ‘AI 칩’ 회사로 변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얼마 전 인스타그램 계정에 ‘강릉 임장’ 소식을 알렸다. “강릉? 갑자기?”를 시작으로 “결혼하니?” “거기 시세는 어때?” “갭투야?”에 이르기까지 많은 메시지를 받았다. ‘어디에 사는가’가 개인의 선택이기보다 사회적 위치로 읽히는 구조 속에서 오랫동안 서울에 발붙이고 살던 이가 서울 밖으로 집을 보러 간다는 소식은 곧장 ‘결혼’과 같은 인생의 큰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거나, 혹시 모를 ‘경제적 이익’으로 해석되기 쉽다.
소속이 정체성을 대신하는 환경에서 자원과 기회가 집중된 수도 서울은 좀처럼 이탈하기 어려운 견고한 중심이 됐다. 내가 프리랜서로 일하면서도 서울을 떠나지 못했던 이유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자유롭다고 말하기 어렵다. 누군가는 세상 물정 모른 선택이라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결혼이나 투자 목적이 아닌 ‘다른 삶’을 기대하며 이주를 고민 중이다. 그 삶의 모습은 아직 분명하지 않다. 다만 부딪쳐야 또렷해질 거라는 감각이 있다.
그곳이 어디든, 몇가지 꼭 충족해야 할 조건은 세울 수 있었다. 우선 KTX 정차역이 있는 도시일 것. 이주에 대한 결심은 비교적 선명하지만, 서울과 완전히 끊어지는 것이 두렵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지금까지 해온 취재와 글쓰기를 이어가고, 고향집을 오가려면 대중교통 접근성이 필수다.
또 하나는 1억원대로 내 집 마련이 가능한 지역일 것. 서울 집값을 기준으로는 변변한 전세조차 구하기 어려운 예산이지만, 20년 넘게 이어온 월세살이를 감안해 감당 가능한 범위를 가늠해본 결과다. 여러 조건을 기준으로 견주는 동안 접근성과 가격 사이에서 많은 지역이 걸러졌고, 내 앞에 놓인 현실적이면서도 가장 마음이 기우는 선택지가 강릉이었다.
인터넷 플랫폼으로 매물을 살펴보는 동안 ‘이게 가능한 거였어?’ 놀라게 될 만큼 서울과 지역의 간극은 예상보다 훨씬 컸다. 시세를 들은 친구들은 “집값은 원래 그래야 하는 거 아니야?” “서울 상급지 아파트 한 채 값이면 네가 본 아파트 한 라인을 몽땅 살 수 있는 거 아니니?” 하며 울분과 탄식이 뒤섞인 반응을 쏟아냈다.
강릉과 그 인접 지역을 자주 오가긴 했지만, 일이나 여행이 아니라 본격적으로 ‘살기 위한 곳’으로 마주한 도시는 이전보다 낯설게 느껴졌다. 그러자 자연스레 물음이 따라왔다. 작가, 기자, 칼럼니스트… 지금까지 나를 설명해주던 이름들을 유지하며 삶의 환경을 바꾸는 게 과연 내가 바라는 다른 삶일까? 이 도시에서 전과 다른 일을 하며 살 수는 없을까?
연고 없는 이에게 낯선 지역을 알아가는 첫 창구는 결국 검색창이다. 묘한 기대감으로 ‘강릉 일자리’를 두드려봤지만, 화면은 생각보다 고요했고 검색창을 붙잡고 있을수록 ‘다른 일’의 윤곽은 오히려 흐릿해졌다. 예컨대 어디에나 수시로 올라오는 공공일자리나, 관광도시 강릉의 관광·서비스업 채용 수요는 결코 적지 않다. 그러나 그것이 곧장 ‘내 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 같았다.
취재차 지역을 오갈 때마다 자주 듣는 말이 있다. “할 일은 많은데 일할 사람이 없어요.” 농촌이든 소도시든, 현장에서는 비슷한 하소연이 반복된다. 분명 필요한 일손이 존재하지만, 그 일손은 표준화된 채용 공고의 형태로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누군가는 일자리가 없다고, 누군가는 사람이 없다고 하지만 결국 부족한 것은 정보가 아니라 서로를 발견할 통로다.
문제는 이 간극이 개인의 정보력이나 우연에 맡겨져 있다는 점이다. 그 사이 기회들은 소리 없이 사그라진다. 한국 사회에서 사람을 이동시키려는 정책은 반복되지만, 정작 이동 이후의 삶을 지탱할 연결 구조가 촘촘하게 설계되어 있는지 되묻게 된다. 분명 존재하지만 눈에 띄지 않는 기회 사이를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건너갈 수 있을까.
정책이 숫자에 매몰되어 사람을 옮기는 데만 급급할 때, 정작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시스템의 구멍을 메우는 사람과 사람의 연결이다. 누군가를 살게 하는 것은 화려한 조감도가 아니라 낯선 이의 손을 잡아줄 ‘사람’이라는 사실에 정책이 응답해주길 기대하는 건 너무 큰 바람일까. 이주라는 말이 아직 어색하게 입안을 맴돌지만, 나는 그 손을 찾아 또다시 강릉행 KTX를 예매한다.
<서진영
‘그 많던 싱아는 누가…’ 속 박완서소설 ‘단종애사’ 사실로 받아들여‘역사를 잘 안다’ 착각했다고 회고
대중의 역사 인식, 소설·영화 기반장면 재현보다 경계해야 하는 건영웅 서사 등 역사 단순화한 구도
철든 후부터 소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소설을 깔봐서가 아니라, 한번 붙잡으면 정신을 못 차리고, 읽고 나면 한동안 그 세계에서 벗어나기 힘들어서 그랬다. 한번은 자습 시간에 선생님이 반 친구 한 명을 호되게 꾸짖으신 적이 있었다. 교실이 시끌시끌했다는데, 나는 그런 소동이 일어난 줄 까맣게 모를 정도로 소설에 푹 빠진 일도 있었다.
역사학을 전공하고 나니,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나이 들어서 고전을 다시 읽으면 새로운 감상을 하게 되고 어쩌고 하는 그런 차원이 아니다. 이제는 소설이 소설로 읽히지 않고 자꾸 사료로 읽히는 것이다. 어릴 적 푹 빠져 읽은 코넌 도일의 셜록 홈스 시리즈를 몇년 전 다시 잡았을 때는 약간의 낭패감까지 들었다. 소설을 읽는데, 머릿속에서 ‘19세기 말 영국인의 신대륙 출신 인물에 대한 인식- 셜록 홈스 시리즈를 중심으로’ 같은 논문 제목이 재생되면 어쩌란 말인가. 머리를 식히자고 잡은 소설이 분석해야 할 사료로 읽히면, 쉼이 쉼이 아니라 또 다른 일이 되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슬프다. 이것도 일종의 직업병이다.
어린 시절에 대한 박완서의 술회
얼마 전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펼쳐 들었다. 주지하다시피 이 책은 작가 박완서(1931~2011)가 유년의 기억을 바탕으로 쓴 자전적 소설이다. 개성 남쪽의 개풍군 박적골 출신 박완서는 일제강점기 말 국민학교 교육을 받기 위해 서울 현저동으로 이주하였다. 이 소설에는 개풍군과 개성, 서울에 대한 세밀한 묘사와 정보가 담겨 있기에, 서울과 개성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확인해보고 싶은 내용이 좀 있었다. 소설이 아니라 사료로 집어 든 셈이다.
역시, 사료로 다시 읽는 소설은 완전히 색다른 느낌과 흥미로운 정보들을 전해주었다. 읽다가 후배의 전공 분야와 직접적으로 관련되는 부분이 있어 사진을 찍어 보여주니 이 후배도 놀라워했다. 고등학교 때 다 읽은 책이건만 이런 내용까지 있었는지는 전혀 기억하고 있지 못했다며 다시 읽어봐야겠다고 했다. 후배가 새삼스레 주목한 문장은 ‘현저동에는 수도가 없었다’는 것. 어느 고등학생이 이런 문장 하나를 기억하겠는가. 어린 시절에 읽은 것은 이래서 더 문제다. 차라리 안 읽은 책이면 애초에 사료 읽는 마음으로 봤을 텐데, 읽은 책이라 내용을 다 안다고 생각해서 도리어 들여다보지 않게 된다.
뚜렷하게 찾을 것이 있어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정작 읽으면서는 원래 확인하려고 한 개성이나 서울에 대한 정보보다 일제강점기의 언어·문자 생활에 더 눈길이 갔다. 어머니가 우격다짐으로 가르친 한글, 자모만 간신히 외우고 글자의 조합 원리는 전혀 깨우치지 못했으나 할머니가 ‘가에 ㄱ 하면 각, 가에 ㄴ 하면 간’이라고 알려준 덕에 제대로 깨우칠 수 있었다는 이야기, 그리고 할아버지에게 동네 아이들과 함께 <천자문>을 배울 때 책에 있는 한글 토를 읽어 <천자문>을 술술 읽는 척했다는 경험 등이 눈길을 끌었다. 여성들의 가내 교육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동시에 한문 교육의 기초로 기능한 한글 교육이 눈에 띈 것이다.
<한문이 말하지 못한 한국사>라는 책을 쓰면서, 조선시대 한글과 한문을 여성(의 문자) 대 남성(의 문자) 구도로만 설명해서는 안 된다고 쓴 적이 있다.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 한글은 여성들이 쓰는 글이라 하여 흔히 안글, 암클 등으로 불리곤 했다.
박완서의 회고에서처럼 어머니와 할머니가 한글을 가르친 것은 이러한 고정관념을 그대로 증명하는 듯하다. 그러나 한글은 한문 교육의 기초로도 활용되었다. <천자문> 책에 한글 토가 달려 있었듯이, 한문을 공부하는 남성들 대부분은 한글을 먼저 익혔다. 남성들의 한문에는 한글이 숨겨져 있었던 셈이다. 이는 일제강점기에도 마찬가지였다. 국어학자 김민수(1926~2018)는 신교육을 받기 전 동네 서당에서 한문을 배우면서 한글을 익혔다.(<우리말이 국어가 되기까지>) 일제강점기 정규 교육에서는 가르치지도 않은 한글이 지속해서 활용되고 퍼진 데에는 역설적으로 전통적인 한문 서당의 역할이 결코 작지 않았다. 세상은 여자 대 남자, 한문 대 한글과 같은 이분법적 도식으로 재단되지 않는다. 그 사이에는 늘 역설의 공간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 시기에는 신교육에 몰두한 이들일수록 조선어문과 멀어지기 쉬웠다. 어린 시절 한글을 익혀 나중에 어머니의 편지를 대필하던 박완서조차도 해방 이전까지는 오빠 책장에 놓여 있던 여러 조선어문으로 된 책을 들춰보지도 않았다고 고백한다. 그랬을 것이다. 나라도 그랬을 것 같다. 촌스럽고 진부한 문장밖에 만들어내지 않는 그런 문자 따위,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단종애사>가 박완서에게 준 충격
해방 후 상황은 급변한다. 곳곳에 한글로 된 방이 붙고 선전물이 돌았다. 신교육을 받은 박완서의 또래들은 대부분 한글을 몰라 허겁지겁 새로이 배우느라 야단이었다. 벌써 한글을 읽을 수 있던 박완서는 벽보나 ‘삐라’를 자유롭게 읽을 수 있다는 데 묘한 쾌감과 자부심을 느꼈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 문학에 대한 최초의 관심으로 이어졌다. 오빠 책장의 책들중에서도 이광수의 <단종애사>를 읽고 잠을 못 잘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다. 박완서는 이렇게 회고한다.
“<단종애사>는 소설이지만 나는 고스란히 사실로 받아들였고, 우리 역사를 좀 더 깊이 계통적으로 알고 싶다는 관심의 단서가 되었다. 그 후 학교에서 정식으로 국사를 배우게 되었고, 어른이 된 후에도 개인적인 취미로 저자에 따라 사관이 다른 몇 종류의 역사책에 접할 기회가 있었지만, 그때그때 흥미 본위로 잡다하게 취한 지식은 전혀 두서가 없어 꼭 정리를 안 하고 함부로 처넣은 서랍처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그야말로 잡식에 머물러 있다. 그나마 세종 대에서 세조 대까지를 가장 확실하게 알고 있는 것처럼 느끼곤 하는데 그런 착각은 순전히 <단종애사>에 근거하고 있지 않나 싶다.”
<왕과 사는 남자> 때문에 단종과 수양대군의 이야기가 장안의 화제인 시절, 하필 박완서의 <단종애사>에 대한 회고를 읽게 되다니! 어쩌면 이 영화가 이렇게나 인기를 끄는 때가 아니었으면 저 회고는 별 인상 없이 무심히 잊어버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마침 시의적절하게 <단종애사>를 언급한 데다 이에 대한 작가의 감상은 우리가 조심해야 할 지점들을 딱 짚어준다는 점에서 눈이 번쩍 뜨였다.
좋은 시대소설이 역사에 관한 관심을 높인다는 점, 그러나 그 소설을 그대로 사실로 받아들이기 쉽다는 점, 제대로 체계적으로 역사 지식을 구성하지 않으면 그냥 잡지식에 불과하게 된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지점은 소설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바람에 ‘세종 대부터 세조 대까지를 가장 확실하게 알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기 쉽다는 점이다.
안 그래도 천만 관객을 훌쩍 넘긴 영화 덕에 역사, 특히 조선시대에 대한 관심이 몹시 높아졌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100년 전 <단종애사>가 그려낸 낡은 이미지가 그대로 반복되는 것이 아쉬웠던 터였다. 물론 이는 <단종애사>의 힘이기도 할 것이다. 막 조선어문 소설을 읽기 시작한 박완서를 충격에 빠뜨릴 정도의 소설이었으니 말이다. 어느 나라나 대중의 역사 인식은 소설이나 영화·드라마 등의 영상화된 서사에 기초한 경우가 많다. 사실 생각보다 역사가들은 영화의 장면이나 인물, 장소, 소도구 설정 같은 것을 그렇게 일일이 문제 삼지는 않는다. 어차피 과거의 완벽한 재현은 불가능하기에 그 한계를 인정하는 일 또한 역사학자의 일이기 때문이다.
지엽적인 설정보다도 역사학자들이 더 경계하는 지점은 이야기가 위치한 맥락과 구조이다. 핍박받는 백성과 구원자로서의 군주, 그 사이에 악역으로 사악하거나 무능한 양반 관료를 두는 설정과 구도는 우리 사극에서 아주 흔하게 발견된다. 그러나 이는 조선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불러올 뿐만 아니라, 부지불식간에 메시아적 영웅 서사에 대한 열광이나 애호로 이어지기 쉽다. 역사를 선악의 구도로 단순화하는 편리함이, 시대의 복잡한 층위를 가려버리는 셈이다. 박완서가 고백했듯 소설이 준 충격이 ‘잡지식의 서랍’에 머물지 않으려면, 우리는 이야기 너머의 맥락을 질문해야 한다. 소설을 사료로 읽으면 삶의 즐거움이 사라지듯이, 소설을 그대로 사실로 받아들이면 사고의 엄밀함을 잃게 된다. 박완서는 이를 ‘착각’이라 콕 짚을 정도로 자신을 성찰해냈다. 이 서늘한 자기객관화라니. 역시 괜히 대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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